8. Q.T의 방법과 실제
  이제 우리는 Q.T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실제적 문제를 다루는 단계에 도달했습니다. 아무리 이론적인 것을 많이 안다고 할찌라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 접근할 것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먼저 효과적인 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시간을 계획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제할 시간을 매일 어떻게 가질 수 있을 까요? 다니엘 6:10-11 말씀이 도움이 됩니다.

  이 말씀은 경건의 시간이라는 주제에 중심구절로 사용될 것입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던 몇몇 정치 지도자들이 다리우스 왕을 부추겨서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이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그 사람을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는 법령에 서명하도록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진행하던 대로 하루세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 기사에 나타난 다니엘의 삶 속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하나는 그가 기도를 위해 일정한 시간을 떼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경우 그것은 하루의 세번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니엘처럼 못할지 모르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도 주 예수님과 함께 만날 일정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중 어느 때가 제일 좋으냐 하는 것은 우리 각자의 일과와 생활일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대부분에게는 아침식사 전 이른 아침을 마련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 시간에 우리는 주님앞에서 마음을 정돈하고 말씀 가운데 그 날을 위한 주님의 지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루 내내 모든 활동가운데서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높이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그리고 우리가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우리를 먹이시고 강하게 하시고, 우리의 길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이러한 시간을 갖기 위해서 조금더 일찍 일어나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경건의 시간을 얼마나 가질것인가 정해놓고 매일 아침마다 그만큼 더 일찍 일어나는 것 입니다. 만일 당신에게 경건의 시간을 갖는 습관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아침식사 전 15분 -30분씩을 갖도록 제안합니다. 오랫동안 경건의 시간을 가져온 사람은 더 늘일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담없이 짧은 시간을 가지다가 점점 시간을 늘여가는 방법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침일찍 일어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어떤 묘책이 없습니다. 단순히 수면을 충분히 취하는 것입니다. 아침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평소 주무시는 것보다 30분 전에 잠자리에 들어야만 합니다. 저녁 늦게까지 이일 저일 꾸물거리다가 늦게 주무신다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경건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취침하는 시간을 정해서 잠자리에 드는것만이 아침에 일어나 주님과 만나서 Q.T를 할수있고 하루를 힘있게 시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에 당신이 승리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마찬가지겠지만 한가지 중요한 것은 경건의 시간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며칠씩 미루었다가 한꺼번에 며칠분을 하는 것을 봅니다. 안하는 것보다는 좋은 일이지만 가능하면 짧은 시간이라도 매일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아침시간을 한번씩 빼버린다고해서 주님이 화내시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그것 때문에 하루가 좋지않게 될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기후와 날씨와의 차이와 흡사합니다.

  날씨는 매일 변하는 것이지만 기후는 그 대체적인 평균치를 가르킵니다. 우리의 경건의 시간도 우리의 생활환경에 따라 매일 조금씩 변할 수는 있지만 평균적으로는 주님과의 교제를 위해 따로 떼어놓는 연속적인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보통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아침시간을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으로 마쳤는데(시 5:3,애가 3:22,23, 창 19:27) 당신은 하루 중 언제 경건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십니까? (아침,점심,저녁시간) 아침이라면 이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몇시에 일어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되십니까?

  두번째는 일정한 장소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다니엘에게서 주목할 두번째 것은 그가 기도를 위해 일정한 장소를 마련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정할 장소는 가능하면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이어야 합니다. 익숙한 장소에서는 낯선 환경과는 달리 우리 생각이 흐트러지는 일이 없습니다. 주위를 산만하게 하거나 방해가 되는 것이 별로 없는 장소를 택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혼자 계시기 위해 때로 어떤 일도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예를 들면 마 14:23에서는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있어서는 어떤 곳이 가장 적합한 장소인지 잘 모르지만 아마 당신집 근처나 거실 또는 지하실 등 당신이 사용하기 좋은 장소가 있을 것입니다. 어떤 곳이든지 주님께서 임재하시면 어떤 환경도 교제와 능력의 거룩한 장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누워서 경건의 시간을 갖지 않도록 하십시요. 일어나 세수를 하고 잠을 완전히 깨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하나님과의 시간을 갖기 전에 면도를 하거나 몸치장을 하면 지체되거나 마음이 산만해져 시간을 허비할 수 있으니 주의 하십시오. 또 조간신문을 먼저 읽음으로써 이 때문에 주님과의 좋은 교제시간을
뺏기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어쨌든 꼭 해야 할 일은 경건의 시간을 위해 혼자 있을 수 있는 장소를 선택하는 일입니다.

  이제 시간과 장소가 정해졌으면 일정한 방식에 의해서 경건의 시간을 시작하는 일입니다. 먼저 전날밤에 일어나야 할 시각에 자명종시계를 맞추어 놓으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경건의 시간에 필요한 성경, 필기도구, Q.T교제, 가능하면 간단한 성경사전까지도 전날밤에 Q.T를 가질 장소에 준비해 두십시오. 이렇게 함으로써 다음날 아침에 그것들을 찾는 시간적인 낭비를 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일어나면 경건의 시간에 대한 준비를 다 갖추고 조용히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을 우리 마음속 가장 깊숙한 곳으로 초대하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잠잠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바에 귀를 기울이며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십시오. 이같이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며 그의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 능력, 사랑, 구원에 관한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찬양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이 하늘을 향해 열릴것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 책 뒷부분에 몇 곡의 찬양을 실어 놓았습니다. 당신이 경건의 시간을 시작하려고 할때 그 찬양을 두 서너곡 부른 다음에 시작하시면 당신의 마음이 주님께로 나아가게 되는 것을 경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엔 시작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오늘 주실 말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 드리십시오. 시편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기록한 말씀을 깨닫는 지혜의 영을 주시지 아니하시면 아무 말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조용히 나 자신을 진리의 말씀안으로 들어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한국에서 발행되는 경건의 시간 교재는 대부분 본문이 그 교재안에 실려 있지 않지만 S.F.C에 발행하는 '날마다 주님과' 교재는 매일매일 그 본문의 말씀이 책을 펴면 좌측에 다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만일 당신이 '날.주'를 가지고 경건의 시간을 갖기를 원하신다면 그 교재만 가지고도 충분히 Q.T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여타의 교재를 가지고 하신다면 성경 자체를 펴서 오늘 본문을 읽어셔야만 합니다.

   ① 소리내어 본문의 말씀을 두서너번 읽습니다.
   ② 본문의 주제가 무엇인지 파악해 봅니다.
   ③ 그리고 단락을 지어서 소제목을 붙여봅니다.
      본문 옆의 여백을 이용하면 좋습니다.
   ④ 먼저 내가 믿어야 할 사실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오른쪽에 보시면 빈칸이 있고 믿어야할 사실에  대해서는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이 어떤분이신지 나에게 주시는 약속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찾은 말씀을 아래칸에 다 기록합니다. 물론 어떤 본문에서는 하나님에 대해서 약속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지 아니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염두해 두십시오.
   ⑤ 다음은 내가 행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시는 명령이 무엇인지? 내가 본 받아야할 것이 어떤 아름다운 것이 있는지? 내가 피해야 할 죄에 대한 지적이나 삼가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봅니다. 그것도 빈칸에다가 다 기록합니다. 연필이나 필기도구를 가지고 기록하는 습관을 꼭 가져야만 합니다. 그냥 읽어보고 묵상하는 것과 생각한 바를 기록하고 묵상하는 것은 너무나 엄청난 차이점이 있습니다.
   ⑥ 깊이 묵상해 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바와 같이 믿을 것과 향할 것을 찾아 적었으면 그것에 대한 하나하나의 질문을 던지면서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 23:1-6까지를 그날 분문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은 나의 목자시다'라고 찾았다고 합시다. "나는 여호와를 목자로 삼고 그의 인도하심대로 살고 있는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묵상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마음 속으로 여러가지 생각들을 이리저리 따져보고, 깊이 숙고하며, 검토해야 합니다. 이것은 생각을 소화시키는 과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다시 말하면 생각을 찬찬히, 그리고 철저하게 되새김질하여 이론과 행동을 긴밀하게 연결시켜 주는 과정입니다. 묵상은 분석이기도 합니다. 묵상은 마치 보석공이 눈부신 다이아몬드를 자세히 관찰하여 닦아서 온갖 빛을 발하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처럼 어떤 주어진 대상을 자세하게 찬찬히 바로 보는 기술입니다.

      성경의 각부분을 묵상하는 것은 마치 보석을 눈부신 태양 빛에 비추어 여러각도로 돌려 가면서 각면에서 생기는 프리즘을 바라보는 것과 흡사합니다. 계속적이고 꾸준한 묵상을 통해서 다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아름다운 보석들을 성경에서 무진장 캐낼 수 있습니다.

     묵상할 때 자신의 집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생각의 불모지나 황무지를 지나다보면 백일몽이나 악몽과 같은 몽상에 휩싸일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문제거리를 묵상할 때도 늘 위험이 따릅니다. 하나님의 생각에만 사로 잡혀야 합니다.

     당신 자신에 대해 묵상하지 말고 하나님께 촛점을 맞추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묵상해 보는 습관을 발전시켜 나가면 거기에서 당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골수와 기름진것을 먹음과 같이 내영혼이 만족할 것이다. 내 입이 기쁜 입술로 주를 주를 찬송하되,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시 63:5-6). 묵상이 없이 주님과의 건전한 교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없습니다. 깊이 묵상하십시오. 되새김질 한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자꾸 씹어야 예수님의 삶 자체를 당신의 영적인 혈액순환으로 끌어 들이게 될 것입니다.
  ⑦ 적용하십시오.
     적용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보여 주신 새로운 진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믿어야 할 것과 행동해야 할 것을 깨닫고 깊이 묵상하더라도 그 깨달음이 단순한 지식으로 끝날 위험성이 많이 있습니다.

     깨닫게 하신 말씀이 내 생활에 변화를 일으켜야 합니다. Q.T를 했는데도 생활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면 교제의 발전이 없고 정체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경건의 시간에 적용부분이 미약했다는 말입니다. 한마디의 말씀을 깨달았더라도 생활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참된 하나님과의 교제로 얻은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시 바리새인들에게 지적했던 것이 바로 적용의 문제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진리를 잘 알고 있었고 교리에 있어서도 전문가들이었으며, 때로 양심적이고 신실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 . . " 왜 이런 가시돋힌 발언을 하셨을까요? 그들은 열심히 구약성경을 연구했지만 삶의 변화가 전혀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정한 의미의 적용이 없었습니다.

   적용에서 몇가지 생각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 시간적으로 현재 필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 말씀으로 오늘 아침에 나에게 말씀하셨다면 오늘 아침에 나에게 필요한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 다시 듣고 적용할 기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적용을 못할 때도 있습니다. 지나칠 때가 더 많겠지요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자상하셔서 또 되풀이 해서 교훈하십니다. 반복해서 들려주실 때는 순종해야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 남에게 적용치 말고 나에게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다른 사람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말씀을 듣는 나쁜 습관이 있습니다. 일차적으로는 나에게 적용하고, 교회나 단체에 적용해야 교회나 단체나 가정이 평안하게 됩니다. 다윗은 자기에게 잘못이 있었음을 나단선지자로부터 책망을 받았을 때 자기 자신에게 잘 적용했습니다. 끔직한 죄를 지었지만 자기자신이 회개하므로 사회의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 너무 비약적으로 적용하면 안됩니다.
      성경말씀은 인간의 일상생활에 관계되는 상황속에서 인간이 이해할 수 있고 사용하고 있는 언어로 전달된 것입니다. 그르므로 올바른 인격체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고 그것을 생활에 적용하는 일이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 자기합리화의 과오에 빠지지 맙시다.
      분쟁이 있는 어떤 교회에서 한 사람은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에 대한 싸움이 아니라"(엡 6:12)는 말씀을 읽고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는 말씀을 읽고 더 과격하게 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 경우 후자가 잘못된 정반대의 적용을 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를 합리화 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욕심 때문에 성경을 곡해 하거나 잘못 적용하는 일은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입니다. 적용도 오른쪽 적용란에 필기 도구로 기록하셔야만 합니다.

    말씀을 나누십시오.
      이제 그 다음 페이지에 있는 메세지를 상고해 보십시오
      이것은 오랫동안 말씀을 묵상한 분들이 당신과 나누고자 써 놓은 메세지 입니다. 이 면을통하여서 당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과 내가 잘못 깨달은 말씀을 바로 교정시켜 줌으로 말씀에 더 가깝게 접근시킬 것이고 나누는 기쁨을 갇도록 안내할 것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과 묵상한 바를 나누십시오.
      자기 혼자서만 적용하다 보면 자기 합리화나 이기적인 착각에 빠질때도 있고, 반대로 너무 자기학대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가족이나 교인이 잘못하는 것만 눈에 띄어 고민에 쌓이고 비관주의가 되기도 합니다. 이런 많은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같이 앉아서 깨달은 것을 나누는 시간이 큰 도움이 됩니다.(영어로 Sharing 이라고 함) 일종의 자기 간증이기도 합니다.
      본인이 인도하는 제자반 모임때에 Sharing함으로, 많은 도전을 받은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Group Sharing(그룹나눔)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기 적용의 훈련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됩니다. 적용이 잘 안되는 분에게도 큰 격려가 될 것입니다. 적용한 것을 나눌때는 설교조로 하지말고 반드시 일인칭 단수로 '저가 . . . 하니까' '저는 . . . 이런 말씀을 통하여 도전을 받았습니다'는 식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 잘 성장하고 있지 못하는 사람의 헛점이 적용을 잘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깨닫게 해 주는 좋은 자극제가 됩니다.
  ● 남의 잘못만 들여다 보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 적용을 하는 것을 듣다보면 나 자신도 마찬가지거나 그보다도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겸손하게 자기고백을 하게 됩니다.
  ● 사람은 다 연약하고 불완전함을 발견하고 완전주의에 빠지는 잘못이 없어지고 더욱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됩니다.
  ● 여러 사람이 이와같은 간증을 나누는 가운데 참된 사랑의 교제가 이루어 집니다.
  ● 공동체 의식이 무르익게 되어 교회나 그룹이 더 활성화 되고 서로 섬기는 자세를 가지게 됩니다. 개인주의나 경쟁심과 같는 욕심에서 벗어나게 되고 서로 상부상조하며 선한 일을 위해서 협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기관이나 소그룹(Small Group)이 Q.T를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면 엄청난 성장의 축복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나눔시간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 가정은 가족들끼리 경건의 시간을 공동적으로 갖고 나누는 일을 함으로 가정이 평화스럽고 행복을 누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가지고 말씀에 따라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Q.T의 기본요소에서 두가지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반드시 기도는 오늘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따라서 세운 기도제목을 제일 밑에 '기도란'에다가 몇가지를 기록하십시오.
    마칠 때도 말씀과 관련된 찬양을 드리십시오.

저녁시간을 위한 Page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① 취침전에 조용한 시간과 장소를 마련하십시오.
② 간단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오늘 하루의 반성과 내일의 계획을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③ 오늘의 삶을 진단해 보십시오<반성>
   ● 어떤 감사한 일이 있었는지?
   ● 무슨 잘못된 일이 있었는지?
   ● 말씀 묵상하고 실천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는지?
   ● 누구를 위해 기도할 필요를 느꼈는지?
④ 내일의 삶을 계획해 보십시오.
   ●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시간 관리와 우선순위 문제를 생각해 보십시오.
   ● 무슨 약속이 있는지? 간혹 약속을 해두고 기록해두지 아니하므로 중복되어 입        장이 곤란할 경우가 생기는 것을 종종 경험합니다.
   ● 무슨 준비를 해 둬야 하는지? 이때 내일 아침 일어나서 경건의 시간을 가질 준비를 완벽하게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⑤ 마지막 기도를 드리십시오.(취침기도)
    오늘의 감사와 회개 그리고 내일을 위한 도움을 간구하십시오. 제일 밑에 기록된 두개의 기도제목을 가지고 중보의 기도를 해 주십시오.

  주일날은 경건의 시간을 따로 가지는 것 보다 한주간을 계획하고 기도목록을 작성하며 기도하는  일에 시간을 할애하도록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새벽기도를 안나가시는 분이더라도 주일 아침에는 교회에 나가서 기도하시는 것이 자신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유익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한주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하면서 시간을 잘 안배하고 우선 순위를 잘 가려서 한주간을 계획하십시오. 만일 경건의 시간을 위해서 마련된 그 난이 부족하면 노-트를 사용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주간동안 기도해야 할 제목들을 적어서 집중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들으시고 웅답해 주실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시간을 계획하여 실천해 나가는 것 이상 더 좋은 비결이 없습니다 (엡 5:15-16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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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리틀송 :

7. Q.T의 기본적인 요소
  우리가 날마다 가지는 경건의 시간의 길이가 30분이든, 1시간이든 여기에는 두가지 즉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포함되어야 하며 각각 드리는 시간은 대략 반반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깊이 묵상하는 것이 수반되어야만 합니다. 경건의 시간을 위한 다른 책자보다 성경자체에 주력하면 그 유익은 확실히 더 커질 것입니다.

  S.D 고오든은 기도에 관한 그의 저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친히 성경안에서 말씀하시기 때문에 성경말씀이 우리의 모든 기도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는 성경도 하나의 책이긴 하지만 책 그 이상의 것이라고 썼습니다. 그는 그 안에 우리가 귀 기울여야 할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심을 믿었습니다. 경건의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목표를 두어야 합니다. 경건의 시간이 주일학교나 성경공부를 가르치기 위한 준비시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의 시간 중에 우리가 주일학교나 성경공부모임 또는 양육 등 사역에서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내용을 주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특별히 그것을 위한 어떤 것을 찾는 것이 그 목표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자신을 위한 영적 영양분의 섭취를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진실로 다른 사람들을 도울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경건의 시간의 목표로 설정했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시는 당신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므로 영적인 양식을 섭취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땅히 예수 그리스도와 더 친밀하게 알고 교제하며 그가 우리를 위해 해 주신 일들을 더 잘 알아가고 또한 그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깨달아 가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 시간을 가짐에 있어서 분명한 계획도 없이 시작하다가 중간에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포기해 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으로 부터 나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얻으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바 그 분과의 교제를 가지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택하거나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스스로 개발해야 합니다. 아주 쉽고 평범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성경의 어느 책을 택하여 처음부터 계속 읽어나가는 것입니다. 읽어가면서 필요한 것은 메모하고 느낀점들은 서로 나눔으로 경건의 시간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에게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매일 접하는 성경을 바로 가지고 하다보면 성경을 읽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고, 훈련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그 성경이 무엇을 교훈하고자 하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방법은 '날마다 주님과' 같은 경건의 일기책을 가지고 일년동안 매일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일정한 방식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신 내용과 생각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가면서 한 단락의 장제목을 붙혀보고 그 내용 가운데서

◎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해서 새롭게 배운 바가 무엇인가?
◎ 어떤 약속의 말씀이 있는가?
◎ 내가 순종해야 할 명령이 무엇인가?
◎ 내가 본받아야 할 점은 어떤 것인가?
◎ 내가 피해야 할 잘못이나 삼가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를 질문해 봅니다.

  이 간단한 방식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그 말씀으로부터 영적 영양분을 섭취하도록 도와줍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나는 이 간단한 질문을 함으로써 큰 도움을 얻어왔고, 종종 그날 하나님께서 나의 개인적인 묵상과 적용을 위해 내게 주기를 원하시는 구체적인 진리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영의 양식이 되기 위해서는 묵상이 중요합니다. 시편 1:2-3 에서는 묵상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여호수아 1:8에도 "이 율법책을. . .주야로 묵상. .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묵상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쉽게 말하면 '되새김질'을 말합니다. 영어의 Meditate(묵상)는 Ruminate(되새김질 하다)와 동의어 입니다. 소, 양, 염소, 영양, 낙타, 기린 등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되새김질하는 동물에 속합니다. 이러한 동물들은 모두 네 개씩의 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보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그들의 위는 네 개의 방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물들이 소화하는 과정은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별로 품위가 있는것 같지 않습니다. 젖소가 풀을 뜯는 것을 관찰해보면 아침 일찍 풀밭으로 나가 마치 잔디 깎는 기계처럼 풀에 머리를 박고는 누가 방해를 하지 않는 한 결코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젖소는 전념하여 먹는 일에 집중합니다. 되새김질 하는 동물은 먹이를 재빨리 대강 씹어 삼킵니다. 그런 후 아침10시쯤 되어 해가 뜨거워지면 그늘에 누워 첫번쨰 위로부터 조금씩 입으로 토해 냅니다. 이것을 철저히 입으로 맷돌질합니다. 그리하여 음식물을 둘째, 세째, 네째 위로 보내어집니다.

  마침 소화된 음식물은 그 동물의 피속에 흡수되어 문자 그대로 동물의 생명의 일부가 됩니다. 다시 꺼낸 음식물을 젖소가 씹을 떄마다 영양분은 풀로부터 빠져나와 소의 침과 혼합되어 다른 위로 보내어 집니다. 이처럼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에 질문을 던져 캐낸 다음 깊이 묵상할때 영적 영양분이 예수님으로부터 흘러나와 우리의 삶의 양식이 되고 영적 혈액의 일부가 되고 생명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묵상할 때는 먼저 자신이 읽거나 듣거나 공부하거나 암송한 구절을 가지고 마음 속으로 곰곰히 생각합니다. 성령의 조명이 없으면 하나님 말씀의 묵상이 별로 유익이 없습니다. 읽은 사실들을 머리로는 파악할 수 있지만 그 의미와 적용에 대한 깨달음은 오직 성령께서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진리를 소화하여 그것을 우리 삶의 일부로 만들 수 있게 해 주시고 종종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그 꺠달음을 주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는 다윗의 다음 기도가 당신 자신의 것이 되게 하십시오.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시 119:34). 경건의 시간에서 하나님과의 의사소통을 위한 또 하나의 수단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아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셨지만,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그 기회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적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기도는 값을 치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분주한 삶이 기도시간을 싫어 합니다. 우리는 긴급한 일의 횡포로부터 싸워야 합니다. 기도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많은 이들에게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몸이 그것을 싫어하고, 마음도 그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E.M 바운즈는 "기도는 영적 수고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수고하기를 원치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순풍을 타고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서 천국에 도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기도는 자신을 낮추는 일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교만과 지혜를 깍아 내리고, 허영을 십자가에 못박으며 영적으로 파탄상태에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 모든 일을 견디어 내기 보다 차라리 기도를 하지 않는 편이 우리에게는 더 쉬운 일입니다. 그러다보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어르렁거리며 찾아다니는 마귀에게로 향하게 됩니다. 별로 기도하지 않거나 전혀 기도하지 않음으로써 바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별로 기도하지 않는 것은 가식이요, 양심에 약을 바른 상태요, 광대극이며 망상일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 연결시켜 주는 생명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난다음에 묵상한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하는데 기도의 방법을 따라하는것이 좋습니다. 네비게이토에서 기도하는데 사용하는 두가지 방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첫번째 방식은 C-P-T-I-P로써 다섯단어의 첫글자를 딴 것입니다.

         C - 자백 (Confession)
         P - 찬양 (Praise)
         T - 감사 (Thanksgiving)
         I - 중보 (Intercession)
         P - 간구 (Petition)

C - 자백: 기도의 첫 단계는 대화의 통로가 열려 있음을 확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죄를 고백하는 일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을 살피사 그가 싫어하시는 것들을 지적해 주실 때, 우리는 우리 죄를 자백하여 그의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요일 1:9 참조).

          시편기자는 이러한 자백의 필요성을 알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내가  내 마음의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으며 내 기도 소리에 주의하셨도다."(시 66:18-19)

          솔로몬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 28:13)

P - 찬양: 우리가 깨끗케 함을 받은 후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도를 드려야합니다. 찬양이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경배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 즉 하나님의 위대하심, 능력, 위엄, 사랑, 공의, 은혜, 자비, 인내 중에 우리 생각의 촛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할 때 암송한 말씀을 사용하는것도 좋습니다. 다윗이 노년에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한 기도는 가장 아름다운 찬양의 기도중 하나입니다.

T - 감사: 우리는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매일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건강에 대해, 모든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주신 것들에 대해, 안전하게 지켜주신 것 등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즐거운 시간을 주신것에 대해, 친구들에 대해, 교회나 성도의 모임에 대해 및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신 일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기도수첩에 감사의 내용을 적고 이 목록을 가지고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또한 시련이나 어려움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것들은 우리 유익을 위해 계획된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1:2-4참조)

I - 중보: 우리는 다른 사람들 위해 기도해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사람들에게 그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서 돌아서면 곧 잊어버리고 그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할 사람의 이름과 기도제목을 적어놓는 경건의 일기 노트가 있으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기도 시간에 이 기도 목록을 보면서 구체적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영적지도자, 자신이 나가는 교회의 목회자 및 주일학교 교사, 그리고 선교사들을 위해 규칙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 가까운 친척이나 친구, 가족, 더 나아가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 기도하는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이는 다 같은 사람으로서 또는 같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필요와 본질적으로 같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듯이 다른사람의 필요도 채워 주십니다.

P-간구: 마지막으로 자신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서 구하십시오. 그리고 그 응답을 기다리십시오. 구체적인 응답을 기대한다면 구체적인 내용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그의 말씀을 따라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고 성경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마 7:7, 요 16:23,24 참조).

  두번째 방식은 A-C-T-S로서 네 단어의 머리 글자를 따온 것입니다.
       A 찬양 (Adoration)
       C 자백 (Confession)
       T 감사 (Thanksgiving)
       S 간구 (Supplication)

  찬양 (Adoration)은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요, 하나님만을 위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 안에는 당신을 위한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즉 당신이 주님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주님께 고백할 때 당신과 주님과의 교제관계는 더욱 견고하게 세워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광대하심, 그의 능력, 그의 위엄과 그의 주권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자백 (Confession)은 하나님이 깨닫게 해 주신 모든 죄를 하나님앞에서 시인하며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백이란 말은 ". . . 에 동의하다."라는 뜻을 가진 어근에서 나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활가운데 죄라고 지적하시는 것을 당신도 죄로 인정하고, 요일 1:9 말씀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감사 (Thanksgiving)는 하나님께 감사하게 여기는 마음을 직접 말로표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풀어 주신 구체적인 은혜를 들어서 그에게 감사하십시오.

  간구 (Supplication)는 필요한 것들을 진지하고도 겸손한 태도로 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구하고 그 다음 자신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요. 이것은 당신이 구하는 것들을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입니다. 기도목록을 만들어 기도가 필요한 다른 사람들의 기도제목을 일일이 기도목록에 작성하여 구제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구체적으로 기도하자면 믿음이 필요하겠지만, 이러한 기도에는 분명한 기도응답이 따르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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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Q.T의 장애물
  그리스도안에서 성장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경건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도 처음 Q.T를 시작했을 때 우리가 경험하는 여러 어려움들을 격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장애물들을 잘 극복하고 현재 열매맺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Q.T가 우리에게 시간과 정력을 들일만큼 충분한 효과와 가치가 있는 훈련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하지만, 막상 매일매일 하나님의 보좌앞에 나아갈려고 할 때 장애물들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미리 그러한 어려움들을 안다면 그것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로 마음 속에 일어나는 두가지 소욕의 갈등입니다. 다시말하면 성령의 소욕보다는 육신의 소욕이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고 결심하며 그 일을 추진하려고 하는 욕망은 성령의 일입니다. 반면 이 일을 저지하고 육체의 안일함을 추구하며 평안하게 살도록 유도하는 것은 육신의 소욕입니다. 옛사람, 즉 옛 성품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계속해서 대적합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을 봅시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옛사람은 경건의 시간을 갖기 원하는 마음을 빼앗아 육체의 쾌락을 좇게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원하는 선한 일 행하기를 바랬지만, 오히려 원치 아니하는 악한 것을 행했다고 하면서 이 괴로움에서 누가 나를 좀 건져낼수 있을까라고 탄식했습니다 (롬 7:15-25참조).

  막상 경건의 시간을 갖기 위해 시작하려하면 온갖 육체의 소욕이 불일듯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를 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Q.T를 해야 되겠다고 결심하고 6시에 일어났는데 벌써 현관문 앞에 신문이 도착해 있는 것을 보고, 오늘은 톱 뉴스가 무엇일까에 관심이 기울여지면서 신문을 먼저 펼쳐봄으로써 경건의 시간을 갖지 못하게 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둘째로 사탄의 방해입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기쁘시게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노력을 방해합니다. 하나님과의 교제 시간은 영혼의 쉬임(Resting)이지만 동시에 투쟁(Wrestling)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그리스도인의 전생애에 있어서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명제입니다. 이 투쟁을 성경에서는 영적전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그런데 공중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못 이 전
쟁을 의식하지 못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늘 깨어 있으라' '전신갑주를 입으라'는 명령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계략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습니다. Q.T는 영적전쟁의 승리의 무기이면서 동시에 가장 적으로부터 공격을 받는 대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런 마귀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요일 1:3)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 때문이다. 사탄의 술수에 넘어가지 말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겨내야 합니다.

  세째는 꼭 지켜야 할 의무라고 생각할 규율을 지키는 부담내지 강박관념이 오히려 장애가 될 때가 많습니다. 모든 신앙생활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Q.T는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스스로가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취한 자발적인 훈련이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선물이라고 인식하며 감사함으로 행해야하는 것입니다. 그렇지않으면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이 되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이 받은 은혜를 지기에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Q.T하지 아니하는 사람들을 경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Q.T를 하루 하지 못했다고 해서 죄의식을 느끼고 마치 하나님께 벌을 받을까봐 두려움마져 가지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나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들이 스스로 선택한 자발적인 경건운동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함이 있고 진리의 말씀이 있는 곳에 자유함이 있습니다.(요8:31-32) 그리고 자유함에는 겸손과 확신이 있습니다.

  네째, 빠른 성장과 변화, 그리고 열매를 맺으려고 하는 마음이 장애 요소가 될수 있습니다. 경건의 시간은 일조일석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현대인들은 너무 빠른 시일내에 성취하려고 하는 조급함이 있는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들은 군사로, 경기자로 그리고 농부로 비유했습니다 (딤후 2:1-8).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승리할 때까지, 거두고자하는 열매를 얻을 때까지 끊임없이 인내와 수고로 충성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학교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쌓으며 예비하신 큰 상을 받을 때 까지 훈련장에 있습니다. "눈물은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그 단을 거두리로다"라고 말합니다.

  다섯째, 하나님 말씀의 권위에 대한 인식 부족입니다. 성경은 그저 우리가 골치아플 때 먹는 아스피린이나 일시적인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임시방편제가 아닙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영원하고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호흡, 생각, 뜻 전체가 함축되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영이 말씀과 만날 때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세상에서 주는 것과는 달리 영원한 기쁨과 평화가 생수의 강처럼
흐릅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듣는 하나님의 음성은 절대권위의 말씀이어서 그 앞에서는 확신과 소망과 기대를 가져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한다."(시 19:7)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장애물들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 까요?
  경건의 시간은 하나님과 나와의 1대 1의 인격적인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체질을 아시고 나 그대로 받아주신다는 자신에 대한 용납과 하나님 속성의 부분들을 다시 인정해야 합니다. 그 사랑과 용서, 꾸짖으시면서도 덮어주시는 관용의 주님앞에 나갈 수 있는 겸손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정직하게 나 자신을 보고 인정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을 시인하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승리하신 주님을 굳게 붙잡는 것 외에는 다른 비결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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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Q.T의 유익
  Q.T를 함으로써 우리에게 주는 유익은 상당히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Q.T는 자아를 긍정적으로 인식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의 집단체 생명으로 만드시기 보다는 개개인에게 독특한 생명을 주시고 자라도록 하심으로써 자아의 중요성을 드높이셨습니다. 그렇다고 자아가 집단과 연관이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개인의 자아를 완성시킴으로써 집단의 삶을 보다 활력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경건의 시간은 내 자아로 하여금 주 안에서의 삶을 완성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효과적인 방편입니다.

  이 방편을 통하여 하나님이나 자신을 소중히 보시는 것처럼 나 자신도 나를 긍정적으로 보게 만듭니다. 흔히 교회안에 직분자들 가운데 하나님과의 사귐의 시간을 늘 밀도있게 가지지 못함으로써 자신이 공허하게 되어지고, 자신의 신앙생활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게 됨으로 교회조직이나 행정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됩니다.

  내 자아를 하나님 앞에 세워두고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았는지 스스로 평가받으려 하는 것은 그 만큼 자아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건의 시간을 갖는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사랑하게 되며 그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울러 타인의 영혼도 사랑하여 긍정적인 눈으로 보게 됩니다. 또한 Q.T는 자아로 하여금 성장하고 성숙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경건의 시간을 가짐으로써 생명이 꿈틀거리는 것을 경험하게 됨으로 동적인 사람이 됩니다. 말씀을 읽고 생각하며, 기도하게 되니까 돌같이 굳은 마음이 옥토같이 부드럽게 변화됩니다. 말씀을 읽는 것은 나 외에는 없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며, 기도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자아중심적인 나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이런 훈련들을 매일매일 반복함으로써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게 해 줍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 이 충만한데까지 이르게"(엡4:13)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Q.T가 주는 유익은 그리스도 중심의 삶을 살도록 인도해 줍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 할찌라도 육신의 소욕이 우리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옛사람이 생각하고 행하기를 좋아하는 생활방식대로 살려고 하는 경향이 많이 있습니다. 믿지 아니할 때는 그런 생활에 대한 점검 조차도 하지않다가 예수를 영접하게 되면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께 공존하면서 마음 속에 심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표현했으며 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갈5:16,17참조).  성령의 욕구대로 행하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통로인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가능하게 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 중심의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히12:3), 그를 바라보며(히12:2),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도록(마4:19) 안내해 줍니다. 가장 중요한 유익은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방법을 받아 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길은 사람의 길과 다르고 그 분의 생각은 사람들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사55:8)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일상생활 가운데서는 그것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얻어진 확신을 갖고 하나님의 길은 최선임을 깨닫게 됩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길로 인도하신다고 할찌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할때 수용하게 되며 감사하게 됩니다.

  마치 우리가 모래 위에 새겨진 하나님의 발자국을 보면서 한적한 해변에 서있는 나 자신이 서서히 그 발자국을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곳에는 보폭이 나의 작은 체격에 비해 너무 넓은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어떤 곳에는 보폭이 너무 좁아 어린애 걸음같이 보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그 지혜로써 내가 모험을 할 위기에 처할 때는 나를 붙드시고, 내가 그분께 더욱 더 주의깊게 될 필요가 있는 곳에서는 나를 견제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의 인도를 따르면 나는 그분이 도는 곳에서 돌며, 그분의 길을 받아 들이고 그 길이 선한 길임을 발견하면서 점점 하나님의 보폭에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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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Q.T의 중요성

  우리가 매일 하나님과 교제시간을 통해서 영적으로 성숙하게 되고 은혜 속에서 강하여지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잘 수행하게 됩니다. 제일 먼저 사고방식이 달라지게 됩니다. 부패한 마음은 세상의 사고방식대로 생각하고 행동을 낳게 됩니다. 그러나 말씀에 충만한 가운데 거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방법에 순응하고 따르게 됩니다. 말하는 것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고, 모든 봉사에 관련된 것이면 하나님의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벧전4:11참조).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고 다 이와 같은 삶을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실제 우리의 생활에서도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깊은 교제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을 덧입을 때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A.T윌리스는 4가지를 얘기했습니다.

  ① 하나님과 교제하므로써 하나님을 더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두 인격 사이에 만남이 없다면 서로에 대한 앎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대방과 자꾸 만남으로써 상대방의 인격에 동화되고 상대방을 점점 깊숙히 알아가게 됩니다. 이와 똑같은 원리로 하나님과 자주 만나면 만날수록 더 깊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게 됩니다.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뜻이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그분을 기쁘게 할 수 있는지, 이웃과 세계에 대한 그분의 궁극적인 계획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은연 중에 함께 있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 관계가 있음을 시사했습니다.(요14:9)

  우리가 사랑의 속성을 생각해 보아도 분명합니다.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사랑의 농도가 짙어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멀리 떨어져 있고 자주 만나지 않을 때 그 사랑의 열기가 식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우선적인 것은 신앙의 대상인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아느냐는 문제입니다. 신앙의 성숙을 얘기할 때 보통사람들은 그분이 정기적인 예배에 얼마나 충실하게 잘 참석하며, 헌금하는 열심이, 그리고 봉사에 척도를 두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신앙의 본질을 아는 것과는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그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느냐 하는 것이 신앙의 성숙도를 잴 수 있는 시금석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라고 칭찬하셨을때 그 여인이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제임스 패커는 인생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큰 즐거움을 주고 만족을 주는 것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렘9:23-24,호6:6참조). 우리는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② 매일 매일 내려야 할 결단을 위한 지시와 안내를 받게 됩니다.
   우리는 매일 생활하는 가운데 복잡한 일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것을 해야할까 저것을 행해야 할까에 대해서 망설여지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과연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며 결정인가에 대해서 방황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님과의 연합을 통해서 온전한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아침에 나를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시143:8)고 했습니다.

  ③ 나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므로 공급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생활 속에서 만나는 문제와 필요들로 말미암아 우리가 어느 정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염려와 두려움과 걱정 근심 중에서도 아버지께 구하면 우리에게 놀라운 평안을 주십니다.(빌4:6,7) 어려움을 당할 때 환난으로부터 구출해 주십니다.(시34:17).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앙망할 때 새 힘을 주셔서 삶의 활기가 넘치게 하십니다(시40:31). 사도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고 했습니다.

  ④ 영적인 열매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것은 우리가 그의 말씀 안에 거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므로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하나님은 농장에 주인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농부고 우리는 그의 밭에 심기운 과실수입니다. 예수님의 보살핌으로 열매 맺지 못한다면 주인되신 하나님으로 부터 제거시키라는 말씀을 들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성품과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요15:4-5).

  그리고 경건의 시간의 중요성은 경건생활의 지속적인 훈련입니다. 훈련도 계속 연습하다보면 기술이 늘게 됩니다. 피아노나 플룻, 바이올린 등의 악기나, 수영, 공던지는 일, 치고 달리는 일 등의 운동, 그리고 페인트칠, 바느질, 요리, 수선하기, 가정일 등도 계속하면 할수록 익숙하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의 창조주이시며, 성도들의 아버지시며, 우주의 주인되신 하나님을 잘 섬기고 경배하고 영광을 돌리는 것은 그의 자녀들의 마땅한 도리입니다. 이 일에 길들여져야 하고 익숙해져야 마땅합니다.

  바울은 이 점에 디모데가 익숙해지기를 바라면서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훈련)하고"고 했습니다 (딤전4:7). 이러한 경건생활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많은 훈련과 반복적인 실행을 통해 진보를 나타내기 때문에 연습(training)하라는 권면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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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Q.T의 역사
  Q.T에 대한 새로운 바람이 한국 교회안에 신선하게 불고 있습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상당히 변화되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어떤사람들은 Q.T가 어떤 새로운 학문이나 삶의 유형인 것처럼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Q.T는 최근에 신기루처럼 일어난 하나의 돌풍인가? 유형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대답을 제공해 줍니다. 앞장에서 살펴본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사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귐도 여러 방법이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예배를 통해서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의 밀도있는 교제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일 쉽게 그리고 착실하게 교제할 수 있었던 방법이 바로 경건의 시간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물론 그 방법을 Q.T라고 해서 이론화해서 세운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존재해 왔던 것을 시인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먼저 구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창조시에 하나님은 인간과 깊이 교제했으며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의 사귐의 시간을 매일 가졌습니다. 창3:8에 "아담과 하와가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과 교제하기 위해서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아담과 하와도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 피조물과 교제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유독 사람과만 사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간의 시간은 창조 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족장시대에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교제하신 것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창18장에 기사는 그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됩니다. 아브라함이 장막문에 앉아서 여호와의 임재를 사모하며 있을 때 길 가는 나그네를 보고 그들을 자기 집에 초청하여 약속의 자손을 낳게 될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창32:23-32에 나타난 얍복강 나루의 야곱의 영적 씨름도 경건의 시간의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기쁨으로 자기를 맞이할 사람보다, 세월이 꽤 지났지만 자기를 위해서 복수의 칼을 품고 있는 형 에서를 생각하니 도저히 얍복강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아내와 자식, 모든 소유를 먼저 건네고 자기 홀로(24절) 남아서 하나님과의 깊은 씨름을 하게 되어 그 문제를 해결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광야교회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세와의 교제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를 지시해 주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는 직접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1:8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정착시대에는 제사의식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물론 공동체와의 교제이긴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교제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리고를 함락시키고 난 후 아간이 여리고를 함락시킬 때 훔친 물건 때문에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했는가를 엿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14)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시 63:6)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         119:97)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시 119:148)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2)

  느헤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 앞에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이 그 뜻을 깨닫게 하는데 힘썼습니다. 그 당시에는 개인이 성경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자가 읽고 해석하고 묵상하는 그런 형태를 취했던 것입니다. 예언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선지자들은 조용한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칼날을 피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형편을 아뢰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의 Q.T에 대한 모본이 나타나 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  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14:23에는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바쁜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아라비아 3년 동안의 생활을 말씀 읽기와 묵상 기도의 생활로 자신을 정비했던 것입니다. 그의 사역 중에서도 경건의 시간을 찾는 것을 정기적인 스케줄로 잡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지역에 갔을 때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강가에 가서 경건의 시간을 가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 16:11-15). 바울은 경건의 시간이 주는 유익이 얼마나 컸던가를 그의 제자요 후배이며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딤전 4:8) 라고 하면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훈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딤전 4:7).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해 있으면서 오랜 기간동안 하나님과 깊이 사귀는 가운데 하늘의 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기독교회사가 진행되면서 경건한 사람들이 경건의 시간을 가져왔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중세시대가 부패해지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시간들을 보냈던 것입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경건한 삶을 유지해 갔던 것입니다. 1800년대 후반에 주님께서는 영국에 경건의 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영국의 대학생들 중 '더글러스 후퍼(Douglas Hopper)'란 사람이 있었는데, 1학년 때인 1882년 캠브리지에서 열린 무디(D.L Moody)의 전도집회에서 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맹렬한 훈련을 받은 그 젊은이는 열심히 경건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서약서에 서약을 하도록 권유했습니다. 그것은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아침 일찍 최소한 20분, 가능하면 한 시간씩을 기도와 성경연구를 위해 따로 떼어놓으며, 또한 잠자기 전에도 계속해서 잠깐씩 그러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4년 후 대학을 떠나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갈 때 마지막으로 동료학생들에게 한말은 놀랍게도 선교에의 권고가 아니라 "경건의 시간을 기억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찰스 시므온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복음운동이 1848년에는 캠브리지 프라이빗 기도회를(The Cambridge Union For Private Prayer) 결성하게 되었다. 이 기도회는 많은 젊은이들의 영적생활과 전도에 있어서 활력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학생들도 점점 많이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목사안수 받기 전에 준비단계로서 정기적 기도 모임의 필요성을 깨닫고 매일 기도모임(Daily prayer meeting 보통 D.P.M.로 불림)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모임이 시작된 후 1년만에 100여명의 회원이 정기적으로 모여 학원과 세계 복음화를 꿈꾸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매일 가지는 경건의 시간의 열기는 세계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창시자이며 초대 회장이었던 도슨 트로트맨과 그의 동료들의 Q.T의 열정은 미국이 영적으로 침체되어갈 때 영적 부흥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4시에 로스엔젤레스 근처의 조그마한 산에서 만나 그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에는 캘리포니아의 롱비취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에는 샌페드로와 로스앤젤레스를 위해서도 기도하기 시작했고, 나중엔 캘리포니아의 다른 도시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비젼을 더 넓혀주심에 따라 그들은 산중턱의 기도 장소에 미국지도를 가지고 가서 손가락으로 한 주 한 주를 짚어가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앨라바마. . . 코네티컷. . . 일리아노. . . 에서 우리가 선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은 계속 다른 비젼을 더욱 넓혀주시고, 그래서 이제는 세계지도를 가지고 가서 뉴질랜드, 캐나다, 아르헨티나, 중국 등 여러 나라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연속 42시간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만나 그들의 짐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었고, 그후 그것은 트로트맨의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 매일 아침 일찍 주님과 만났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고 이 영적 경건운동이 점점 확산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2차 대전 중 각 주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와서 믿음 안에서 세워졌으며, 그들은 군대 및 여러 나라에서 큰영향을 미쳤습니다. 로이 로버트슨이 최초의 네비게이토 선교사가 되어 1948년에 중국으로 갔습니다. 이 일은 점점 아시아에 발전해 갔고, 호주, 뉴질랜드, 유럽 등지에서 개척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트로트맨이 주님께로 돌아간 그 주간에도 5명의 네비게이토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서의 선교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했습니다. 네비게이토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와 선교를 시작하면서 새벽기도회를 가지게 된 것이 경건의 시간의 연속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과는 그 형태가 다르지만 조용한 시간에 교회당에 모여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경건의 시간이라고 부인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실제 Q.T라는 명목으로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성서유니온의 윤종하 총무님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가 영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한국교회도 영국교회처럼 경건의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복음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매일성경'을 발행하여 보급하게 된 것입니다. 그 세월이 벌써 20년이 다 되었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별나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이 영문을 몰랐지만 실제 해 봄으로써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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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Q.T의 가능성
  만유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인류역사를 통하여 사람과 하나님 자신과의 교제를 처음부터 주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교제를 나누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것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하면 모든 인간은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를 나눌 수 있으며 또 나누어야 할 필요가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인간은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이 하나님처럼 되려고 하다가 스스로 이 사귐을 파괴하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 빠지게 되었고 결국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본래의 관계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인간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여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지만, 인간의 방법으로는 도저히 교제의 회복이 불가능했습니다. 교제가 단절된 인간은 하나님에 대하여 여러가지 반응을 나타내기 시작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오히려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다 하는도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다 치우쳤으며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없으니 하나도 없도다."(시 14 : 1-3)

  또 우상을 만들어 섬기게 되었습니다.
"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맡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명으로 소리도 못하느니라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고 더러운 것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으로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있다하나 우둔하게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이러한 처참한 형편에 처한 인생들을 다시 회복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 가운데 다시 거할 수 있도록 계획하셨던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완성된 교제를 위한 그림자로써 인간들과 하나님과의 교제를 제사라고 하는 방법을 통해서 가능하게 했습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점점 멀어지게 합니다. 부모와 자녀 관계에도 그렇습니다. 자식이 부모님께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는 부모님의 얼굴 뵙는 것을 싫어합니다.

저희 집에 희락이라는 아들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예방주사를 맞기 위해서 가져온 다른 친구의 돈을 훔쳐와서 얼마는 과자 사먹고 얼마는 장난감 사고 얼마를 남겨서 어머니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평소 저녁에 아빠가 들어가면 언제나 반갑게 맞이하고 재롱을 부리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내에게 물었더니 낮에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자초지종을 들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사이에도 죄라고 하는것이 가려지면 교제가 서먹서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해결받고 지속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서 제사 제도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본인의 죄 대신 짐승을 희생시킴으로써 사죄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불완전하여 반복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완전한 교제를 위해서 어린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어 주시고 십자가에서 희생시켜 주심으로써 담대히 주님의 은혜 보좌앞에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히 4:16) 하나님과 원수의 관계였던 인간을 화목케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울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하사'(골 1:20-22)라고 했습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은 매일 서서 섬기며 반복해서 같은 제사를 드리지만 언제든지 죄를 없이하지 못했습니다 (히 10:11). 그러나 그리스도는 한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히 10:10), 모든 사람들이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 갈 담력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히 10:19). 백성이나 제사장들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지성소에 들어가지 못하고 일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 난 다음에야 들어 갈 수 있는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담대히 들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교제를 다시 회복시켜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 이라고 합니다 (히 10 :20). 이제 우리는 자유롭게 마음껏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었습니다. 사귐의 지속은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계속되지 아니한다면 사귐의 회복 그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한 후에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하시며 그를 찾으시던 하나님은 지금도 그 때와 똑같이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하시면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Q.T의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분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음성 듣기를 원하면 만나주시는 분이 바로 교제를 회복시켜주신 그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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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Q.T의 정의
  Q.T라고 할때 아직까지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Q.T는 Quiet Time의 첫머리 글자를 따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우리말로는 '조용한 시간', 경건의 시간', '묵상의 시간', '명상의 시간' 또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더라도 그 의미가 통하기 때문에 별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경건의 시간이란 무엇입니까?
경건의 시간에 대한 모범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예수님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하루의 첫시간을 하나님 과  함께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러므로 경건의 시간은 그리스도인들이 은밀하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습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구세주이며 주님이신 그분과의 만남을 위해 미리 따로 떼어 놓은 시간을 말합니다.
윤종하 총무는 경건의 시간을 정의하기를 "성경을 양식으로 섭취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실리모어는 "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 청종하고 또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아뢰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패커는 "명상이란 하나님의 역사와 방법과 목적과 약속에 대하여 아는 여러가지 일들을 회상하고 생각해 보는 행동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한 수단으로써 하나님의 임제와 하나님이 보시는 앞에서 그의 도움을 힘입어 의식적으로 수행되는 일종의 거룩한 사상행동이다" 라고 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분들의 말씀을 정리하면 '경건의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으로 이루어져 주님과 개인적으로 만나 깊이 교제하는 조용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말하고자 하는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건'이란 단어입니다.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자신이 훈련된 사람들은 그 시대 시대마다 하나님꼐서 사용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별 수 없이 하나님과 가까이 있지 아니하면 세상적이 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바쁜 시간들 속에서도 하나님과 사귐의 시간을 따로 떼어서 교제할 때 자신이 깨어 있어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할 때
하늘 광경을 보게 되었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 시대에 쓰임받은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40년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는 지도자로 쓰임받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경건의 유익을 위해서 조용한 시간을 마련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이고 우선적인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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