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티훈련학교-조혜경

3. Q.T의 역사

리틀송 2009. 1. 3. 00:58

3. Q.T의 역사
  Q.T에 대한 새로운 바람이 한국 교회안에 신선하게 불고 있습니다.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경건의 시간을 통해서 상당히 변화되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어떤사람들은 Q.T가 어떤 새로운 학문이나 삶의 유형인 것처럼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면 과연 Q.T는 최근에 신기루처럼 일어난 하나의 돌풍인가? 유형인가?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한 대답을 제공해 줍니다. 앞장에서 살펴본대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사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귐도 여러 방법이 있겠습니다. 예를 들면 예배를 통해서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의 밀도있는 교제를 이루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들이 제일 쉽게 그리고 착실하게 교제할 수 있었던 방법이 바로 경건의 시간이었습니다. 옛날에는 물론 그 방법을 Q.T라고 해서 이론화해서 세운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존재해 왔던 것을 시인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먼저 구약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창조시에 하나님은 인간과 깊이 교제했으며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의 사귐의 시간을 매일 가졌습니다. 창3:8에 "아담과 하와가 날이 서늘할 때에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당신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과 교제하기 위해서 동산에 거니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아담과 하와도 그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 피조물과 교제하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유독 사람과만 사귀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간의 시간은 창조 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족장시대에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서 교제하신 것을 여러 곳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창18장에 기사는 그 좋은 본보기라고 생각됩니다. 아브라함이 장막문에 앉아서 여호와의 임재를 사모하며 있을 때 길 가는 나그네를 보고 그들을 자기 집에 초청하여 약속의 자손을 낳게 될 기쁜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창32:23-32에 나타난 얍복강 나루의 야곱의 영적 씨름도 경건의 시간의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이제 고향에 돌아가면 기쁨으로 자기를 맞이할 사람보다, 세월이 꽤 지났지만 자기를 위해서 복수의 칼을 품고 있는 형 에서를 생각하니 도저히 얍복강을 건널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의 아내와 자식, 모든 소유를 먼저 건네고 자기 홀로(24절) 남아서 하나님과의 깊은 씨름을 하게 되어 그 문제를 해결 받게 되었습니다.

  그 후 광야교회 가운데서 하나님은 모세와의 교제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할 것인가를 지시해 주었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는 직접 경건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수아1:8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정착시대에는 제사의식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게 하시고, 물론 공동체와의 교제이긴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교제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여리고를 함락시키고 난 후 아간이 여리고를 함락시킬 때 훔친 물건 때문에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과 교제했는가를 엿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반석이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 19:14)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밤중에 주를 묵상할 때에 하오리니" (시 63:6)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시         119:97)
"주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내 눈이 야경이 깊기 전에 깨었나이다" (시 119:148)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 1:2)

  느헤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 앞에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들이 그 뜻을 깨닫게 하는데 힘썼습니다. 그 당시에는 개인이 성경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대표자가 읽고 해석하고 묵상하는 그런 형태를 취했던 것입니다. 예언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하시고 선지자들은 조용한 시간을 내어서 하나님의 뜻을 찾았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칼날을 피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을 바라보며 자신의 형편을 아뢰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를 위로해 주셨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예수님의 Q.T에 대한 모본이 나타나 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  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14:23에는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너무나 바쁜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시간을 게을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사도바울도 아라비아 3년 동안의 생활을 말씀 읽기와 묵상 기도의 생활로 자신을 정비했던 것입니다. 그의 사역 중에서도 경건의 시간을 찾는 것을 정기적인 스케줄로 잡았던 것입니다. 빌립보지역에 갔을 때 안식일에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강가에 가서 경건의 시간을 가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행 16:11-15). 바울은 경건의 시간이 주는 유익이 얼마나 컸던가를 그의 제자요 후배이며 동역자인 디모데에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다"(딤전 4:8) 라고 하면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훈련)하라'고 권면했습니다 (딤전 4:7).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해 있으면서 오랜 기간동안 하나님과 깊이 사귀는 가운데 하늘의 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기독교회사가 진행되면서 경건한 사람들이 경건의 시간을 가져왔던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중세시대가 부패해지자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은 수도원에 들어가서 하나님과의 시간들을 보냈던 것입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경건한 삶을 유지해 갔던 것입니다. 1800년대 후반에 주님께서는 영국에 경건의 운동을 일으키셨습니다. 영국의 대학생들 중 '더글러스 후퍼(Douglas Hopper)'란 사람이 있었는데, 1학년 때인 1882년 캠브리지에서 열린 무디(D.L Moody)의 전도집회에서 회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맹렬한 훈련을 받은 그 젊은이는 열심히 경건의 시간을 갖기 시작했고 많은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다음과 같은 서약서에 서약을 하도록 권유했습니다. 그것은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위해, 아침 일찍 최소한 20분, 가능하면 한 시간씩을 기도와 성경연구를 위해 따로 떼어놓으며, 또한 잠자기 전에도 계속해서 잠깐씩 그러한 시간을 갖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4년 후 대학을 떠나 아프리카에 선교사로 갈 때 마지막으로 동료학생들에게 한말은 놀랍게도 선교에의 권고가 아니라 "경건의 시간을 기억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캠브리지 대학의 찰스 시므온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복음운동이 1848년에는 캠브리지 프라이빗 기도회를(The Cambridge Union For Private Prayer) 결성하게 되었다. 이 기도회는 많은 젊은이들의 영적생활과 전도에 있어서 활력소가 되었던 것입니다. 신학생들도 점점 많이 참가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목사안수 받기 전에 준비단계로서 정기적 기도 모임의 필요성을 깨닫고 매일 기도모임(Daily prayer meeting 보통 D.P.M.로 불림)을 가졌던 것입니다. 이 모임이 시작된 후 1년만에 100여명의 회원이 정기적으로 모여 학원과 세계 복음화를 꿈꾸며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매일 가지는 경건의 시간의 열기는 세계 곳곳에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창시자이며 초대 회장이었던 도슨 트로트맨과 그의 동료들의 Q.T의 열정은 미국이 영적으로 침체되어갈 때 영적 부흥을 일으킨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아침 4시에 로스엔젤레스 근처의 조그마한 산에서 만나 그들의 사역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에는 캘리포니아의 롱비취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그 다음에는 샌페드로와 로스앤젤레스를 위해서도 기도하기 시작했고, 나중엔 캘리포니아의 다른 도시들을 위해서도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비젼을 더 넓혀주심에 따라 그들은 산중턱의 기도 장소에 미국지도를 가지고 가서 손가락으로 한 주 한 주를 짚어가며 기도했습니다. "주님, 앨라바마. . . 코네티컷. . . 일리아노. . . 에서 우리가 선교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들은 계속 다른 비젼을 더욱 넓혀주시고, 그래서 이제는 세계지도를 가지고 가서 뉴질랜드, 캐나다, 아르헨티나, 중국 등 여러 나라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연속 42시간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만나 그들의 짐을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었고, 그후 그것은 트로트맨의 삶의 방식이 되었습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 매일 아침 일찍 주님과 만났습니다.

  그들의 기도는 응답되고 이 영적 경건운동이 점점 확산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2차 대전 중 각 주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나아와서 믿음 안에서 세워졌으며, 그들은 군대 및 여러 나라에서 큰영향을 미쳤습니다. 로이 로버트슨이 최초의 네비게이토 선교사가 되어 1948년에 중국으로 갔습니다. 이 일은 점점 아시아에 발전해 갔고, 호주, 뉴질랜드, 유럽 등지에서 개척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트로트맨이 주님께로 돌아간 그 주간에도 5명의 네비게이토 선교사들이 아프리카에서의 선교사역을 시작하기 위해 케냐의 나이로비에 도착했습니다. 네비게이토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선교사님들이 100년 전에 복음을 가지고 들어와 선교를 시작하면서 새벽기도회를 가지게 된 것이 경건의 시간의 연속이라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것과는 그 형태가 다르지만 조용한 시간에 교회당에 모여서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경건의 시간이라고 부인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실제 Q.T라는 명목으로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친 것은 한국성서유니온의 윤종하 총무님이라고 여겨집니다. 그가 영국에 가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한국교회도 영국교회처럼 경건의 시간을 갖게 함으로써 복음화를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매일성경'을 발행하여 보급하게 된 것입니다. 그 세월이 벌써 20년이 다 되었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하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유별나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사람들이 영문을 몰랐지만 실제 해 봄으로써 그 필요성과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